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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산책 한복무료관람입장정보

by oneman1004 2023. 4. 1.

날씨가 완연한 봄 날씨가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봄 꽃 축제 한다고 북적북적 하는데요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창경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제에 공존했던 그 자리를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해보는 건 어떨까요? 
창경궁은 창건 이래 끊임없는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면서도 궁궐로서의 격과 위상을 지켜왔습니다.  순종이1907년 즉위하면서 거처를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으며 이 일을 계기로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들이 그해부터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창경궁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창경원 장서각 창경원
창경원창경원야경

창경궁 복원공사를 1964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일본식 건물인 수정궁을 철거하고 1966년에 팔각정 형태의 새로운 수정궁을 준공하였습니다. 1981년 정부는 '창경궁 복원계획'을 정하고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이름도 복원하고 창경원에 있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일본인이 고의적으로 심어놓았던 벚나무도 뽑아냈습니다. 1986년에는 명정전 회랑과 문정전 등 일부 전각을 복원하였으며 해방 이후 조선시대 왕실의 도서를 관리하던 장서각의 이름으로 남아 있던 자경전터의 박물관은 그 기능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넘겨준 뒤 1992년 헐리고 기금은 녹지가 되었습니다.

창경궁지도
창경궁지도
창경궁 지도위치설명
창경궁 지도위치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 홍화문

1 창경궁 홍화문

  • 창경궁의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창경궁 옥천교
창경궁 옥천교

2 창경궁 옥천교 

  • 창경궁의 옥천교는 1484년(성종15)에 건립된 것으로'구슬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 하여 옥천교라 하였습니다.
  • 궁궐에 남아있는 다리 중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다리 양쪽 아래에 아치모양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의 귀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귀신을 쫓아내어 궁궐을 보호하는 수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경궁 명정문
창경궁 명정문

3 창경궁 명정문 

  • 창경궁의 명정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보다 안쪽에 좋여 중문의 기능을 갖는 평삼문입니다. 

창경궁 명정전
창경궁 명정전

4 창경궁 명정전

  • 창경궁의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정전으로 명전이란 정사를 밝힌단라는 뜻입니다.
  •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증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입니다.
  • 인종이 1544년(중종39)이곳에서 즉위했습니다.
  •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혼례가 치러지기도 했습니다.
  • 1484년 (성종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니 현존하는 조선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 창경궁은 애초에 정치를 위해 지은 궁궐이 아니라 대비 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입니다.
  • 정전 마당 양옆에 늘어선 돌들은 품계석이라 하는 데 행사 때 문무백관들이 품계석에 새겨진 각자의 품계에 맞춰 국왕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무신 좌측에는 문신이 섭니다.
  • 삼도 가운데 중앙에 있는 어도는 국왕이 이동하는 길이었습니다.
  • 명전전으로 오르는 계단 가운데 있는 경사진 돌을 답도라 하는데 그위로 국왕이 탄 가마가 지나갔습니다.
  • 명전 전 건물 내부에는 국왕이 앉았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일월오봉병이라는 병풍이 있습니다.
  • 해와 달은 국왕과 왕비 또는 양과 음을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의 산은 전국의 오악 또는 오행을 상징하여 국왕과 왕비가 전국토를 잘 다르림을 뜻한다고 합니다.
  • 명정전 앞 양 옆에는 드므라 불리는 큰 총동그릇이 있는데 드므에는 물을 가득 담아두어 화재예방의 의미가 있지만 화마가 불을 지르러 왔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창경궁 문정전
창경궁 문정전

5 창경궁 문정전

  • 창경궁의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문교로서 정치를 편다라는 뜻입니다.
  • 국왕이 관리들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었습니다.
  •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 다시 지었습니다.
  • 문정전은 왕실 가족의 신주를 모신 혼전으로 쓰인경우도 있었습니다.
  • 영조의 첫째 장비인 정성왕후와 철종의 비인 청인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문정전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하고 서인으로 폐한 곳이기도 합니다.

창경궁 숭문당
창경궁 숭문당

6 창경궁 숭문당

  • 창경궁의 숭문당은 글자 그대로 학문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국왕의 경연을 벌이던 곳으로 영조는 성균관 유생이나 종친들을 접견하고 유생들을 시험했습니다.

창경궁 빈양문
창경궁 빈양문

7 창경궁 빈양문

  • 창경궁 빈양문의 빈양은 '밝음을 공경히 맞이한다'는 뜻으로 밝음인 양은 국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이문을 지나면 왕의 사적 생활공간으로 통하기 때문에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 빈양문은 명정전 뒤쪽에 있는데 이 문은 국왕의 공적 공간인 명정전과 사적 공간인 내전을 연결하는 문입니다.

창경궁 함인정
창경궁 함인정

8 창경궁 함인정

  • 창경궁의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습니다.
  • 영조가 문.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습니다.
  •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19세기 궁궐기록화인 [동궐도]에는 지금과 달리 삼면이 막혀있었습니다.

창경궁 경춘전
창경궁 경춘전

9 창경궁 경춘전

  • 창경궁의 경춘전은 1484년 (성종 15) 창건 당시에 건립된 침전 건물로 주로 왕대비, 왕비 또는 세자빈 등이 거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이괄의 난 등으로 여러차례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중건되었습니다.

창경궁 환경전
창경궁 환경전

10 창경궁 환경전

  • 창경궁의 환경전은 기쁘고 경사스럽다는 뜻으로 세자나 국왕이 생활하던 곳입니다.
  • 이 건물은 빈전과 혼전으로 사용된 예가 많았는데 빈전은 왕 또는 왕족의 시신이 들어 있는 재궁(관)을 모신 건물을 말합니다.

창경궁 통명전
창경궁 통명전

11 창경궁 통명전

  • 창경궁의 통명전은 '통달하여 밝다'라는 뜻이며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전각입니다.
  • 통명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월대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을 깔았습니다.
  • 희빈 장씨의 인현왕후 저주사건이 있었습니다.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강등된 장 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었습니다. 희빈 장 씨는 이로 인하여 사약을 받게 되고 희빈 장 씨의 시신은 정문인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을 통해 나가게 됩니다.

창경궁 양화당
창경궁 양화당

12 창경궁 양화당

  • 창경궁의 통명전 옆의 양화당은 '조화로음을 기른다'는 뜻이 있습니다.
  •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습니다.

창경궁 영춘헌집복헌
창경궁 영춘헌.집복헌

13 창경궁 영춘헌.집복헌

  • 영춘헌은 내전 건물입니다.
  • 영춘헌은 '봄을 맞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쪽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입니다.
  • 영춘헌은 정조가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하였습니다.

창경궁 풍기대
창경궁 풍기대

14 창경궁 풍기대

  • 창경궁의 풍기대는 영춘헌과 집복헌 뒤 언덕 위에 세워져 있으며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기 위해 세웠던 받침대입니다.
  • 풍기는 풍신 기라고도 합니다. 1770년 영조 46에 측우기와 함께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창덕궁 통제문 안에 설치되었다가 해방 전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창경궁 성종대와태실 성종대왕태실비
창경궁 성종대와태실 및 성종대왕태실비

15  창경궁 성종대왕태실 및  성종대왕태실비

  • 성종의 태를 묻어놓았던 태실과 그제작과 수리 기간을 적은 태실비입니다.
  • 조선왕실에서는 왕손이 태어나면 명당지를 찾아 태항아리를 묻어 보존하였습니다.
  •  1928년에서 1930년 사이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왕실 가족의 태실 항아리를 서삼릉으로 이봉하였습니다.
  •  경기도 광주에 있던 성종대왕의 태실석물을 1928년에 이곳 창경궁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창경궁 춘당지
창경궁 춘당지

16 창경궁 춘당지

  • 창경궁의 춘당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습니다.
  •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습니다.
  • 1909년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연못을 만들었고 1986년에 우리 전통약식에 가깝게 재조성 한 것입니다.
  • 위쪽에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 백련지/벽련담 등으로 부른 기록도 있습니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17 창경궁 팔각 칠 층석탑

  • 춘당지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찰 각 칠 층석탑이 보입니다.
  • 이 탑은 일제 강점기 이와가박물관을 만들 때 만주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매입하여 세운 것입니다.
  • 라마식 탑으로 중국 명나라(1470년) 때 만들어졌다는 글귀가 탑신에 들어있습니다.
  • 기단은 사각형의 팔각의 2중 기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
창경궁 대온실(식물원)

18 창경궁 대온실(식물원)

  • 1903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입니다.
  • 대온실은 창덕궁에 거처하는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일들이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습니다.
  •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완성하였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우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입니다.
  •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습니다. 

창경궁 관덕정
창경궁 관덕정

19 창경궁 관덕정

  • 창경궁의 관덕정은 대온실 오른쪽 숲에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이곳이 관덕정입니다.
  • 이곳은 원래 누에를 치던 곳이었습니다.
  • 1642년(인조 20)에 활쏘기를 위한 사정을 지어 취미정이라 불렀으며 1664년(현종 5)에 이름을 관덕정으로 바뀌었습니다.
  • 관덕정 아래에는 군사들이 활 쏘기나 말타기 연습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창경궁 관천대
창경궁 관천대

20 창경궁 관천대

  • 문정전 앞쪽에 있으며 천문을 관측하던 소간의를 설치했던 시설로 보입니다.
  •  최근에는 시간을 측정하던 일성정시의를 설치했던 시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창경궁 선인문
창경궁 선인문

21 창경궁 선인문

  • 창경궁의 선인문의 '선인은 인을 널리 펼친다'는 뜻이며 홍화문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 곧 창경궁 동남쪽 담장에 있는 궁문입니다. 

창경궁 과학의문
창경궁 과학의문

23  창경궁 과학의문

  • 창경궁의 과학의 문은 1971년 9월 창경궁의 월근문 동쪽 지역에 '국립과학관'을 준공하고 창경궁과 과학관 사이에 만든 문입니다.

창경궁 월근문
창경궁 월근문

24 창경궁 월근문

  • '매달 뵙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월근문은 홍화문 북쪽에 있습니다.
  • 월근문은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인경모궁에 수시로 참배하기 위해 건립하였습니다.
  • 정조가 매달 초하루 경모궁에 참배하러 거동할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을 경유하였습니다.

창경궁 집춘문
창경궁 집춘문

26  창경궁 집춘문

  • 창경궁 집춘문의 집춘은 '봉의 기운을 모은다'라는 뜻입니다.
  • 창경궁 동북쪽 당장에 있는 궁문으로 서울 문묘가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  현제 이 문 외부 지역에 민가가 들어서 있어 출입문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 집춘문은 후원의 동문으로 성균관 서쪽과 제일 가까워 국왕들이 성균관으로 나갈 때에는 이 문을 경유했다고 합니다.

 

창경궁 한복무료관람안내

한복입은 그림
창덕궁 무료관람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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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무료관람 안내

창덕궁 한복 무료관람입장정보

  •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모두 한복으로 인정합니다.
  • 저고리에 고름이 없더라도 여미는 깃 형태의 저고리는 한복으로인정합니다.
  • 티셔츠형태의 생활한복저고리는 한복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어르신들이 입는 모시옷은 저고리 바지 저고리 치마의 한복 가이드라인에 준하면 인정합니다.
  • 외국인이 한복을 작용해도 무료관람 대상입니다.
  • 저고리에 허리치마도 한복으로 인정합니다. 단 저고리가 허리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 저고리 없이 원피스형 한복은 한복으로 인정 안합니다. 대신 여미는 깃의 저고리를 착용한경우 인정합니다.
  • 평상복에 반만 한복을 착용하면 인정안합니다. 단 여미는 깃의  저고리와 하의 (치마,바지)를 갖춘 경우 한복으로 인정합니다.
  • 한복바지 허리춤 마감은 지퍼형인데 발목에 대님이 없어도 한복으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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